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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차

내 곁에서

* 귀신을 보는 아이 X 귀신을 보는 척하는 아이


  “나도 귀신이 보여.”

  그래, 여기가 그 모든 일의 시작이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네가 날 돌아봐 줄 것 같아서. 나에게 있어 너만큼이나 네 안에서 나도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걸 보이는 척할 자신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믿어왔으니까. 형은 네 곁에 있어, 잊지 않으면 우리 곁에 살아 있는 거야. 내가 울 때면 항상 부모님은 그런 말들로 나를 달래려 했지만 형은 나를 구하려다 죽었고, 여기엔 없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 때는 믿어보려고 나름 노력했으니까.

  내 말을 들은 너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너도 귀신이 보인다고? 그럼 내가 귀신을 본다는 것도 믿어주는 거야?”

  “당연하지. 나한테도 보인다니까?”

  정말로 기뻐하는 네 얼굴을 보니 이런 거짓말쯤이야 몇 번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네가 그렇게 좋아할 만도 하다.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너는 네 스스로 귀신을 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수업시간에 허공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인다든가, 가끔 혼자 울어버리는 너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그런 소문들을 만들어 냈고, 어느 날 한 아이가 살짝 들었다는 학부모상담내용을 통해 네가 귀신을 보는 아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 후로 아이들은 너를 멀리했다.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을 원망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한창 푸른빛 활기로 가득 찬 학교에서 죽음과 한없이 가까운 너는 한참 동떨어진 존재로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 아마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너는 직접 네 얘기를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혼자 밥을 먹고, 이동하고, 최대한 조용히 있으려고 쉬는 시간에도 책만 읽고 있는 너. 그러면서도 슬픈 기색 하나 없이 힘차게 지내려는 그 모습에, 곁에 있어 주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나라도 너에게 힘이 되어 줄 수는 없는 걸까, 고민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물론 나도 믿기 힘들었다. 정말 귀신이 보인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하지만 네가 가끔 하는 행동들을 보면 꼭 귀신이 아니더라도 확실히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힘차게 살아가려는 너에게 어설픈 동정 따윈 오히려 상처를 줄 뿐이다. 너의 마음을 나에게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네가 나를 봐줄까. 그래서 생각해 낸 거짓말이 나에게도 귀신이 보인다는 말이었다. 동질감을 느낀 너는 나를 봐 줄 수밖에 없겠지. 조금이라도 나를 더 신경 써 주겠지. 속이고 있다는 거, 비겁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 내게는 간절했다.

  그 일 이후로 너는 나에게 밝게 인사해 주었다. 나도 처음으로 너에게 인사를 건넸다.

  “있잖아, 저기 아기 귀신 보여? 우리 학교에 몇 년째 머물고 있다?”

  “, 그래? 안 그래도 자주 보인다 했더니 아예 여기 사는구나.”

  너는 꽤 즐거워 보였다.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처음일 테니, 많이 들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조금의 거짓말을 편하게 보탤 수 있다면 내게 보이지 않는 것,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도 충분히 이어나갈 수 있다. 보이는 척, 아는 척. 그러게, 정말? 같은 맞장구 표현만 적절히 사용할 줄 알면 웬만한 상황엔 자연스레 써 먹을 수 있고 그것으로도 안 된다 싶을 땐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이렇게 주로 듣는 쪽이다 보니 너는 더 신나서 여러 얘기를 나에게 해 오곤 했다. 우리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이유로,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친밀감이 쌓여 갔다. 밥도, 쉬는 시간도, 하교할 때도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끔은 주말에 카페나 근처 공원에서 만날 때도 있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네가 봐 온 귀신 얘기였지만, 나는 그 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너와 같이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료수를 마시고, 너의 미소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꿈만 같았다. 내 곁이라 그런지 너는 조금 더 안심하고, 귀신들을 쳐다보거나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언젠가 한 번은 네가 갑자기 말을 뚝 그치더니 조금 지나자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에게 너는 어떡해, 너무 불쌍해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금 진정하고 얘기해보라는 내 말에 너는 우리 옆에 서 있다는 한 귀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자인데, 남편에게 해 줄 요리를 위해 장을 보고 돌아가다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에 치여 죽었다고 한다. 너는 참 눈물이 많은 아이구나, 하는 걸 느꼈다. 분명 그 여자의 이야기는 슬프긴 했지만 내가 진짜로 귀신이 보여서 직접 그 얘기를 듣는다고 해도, 울 정도의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너에게 휴지를 건네주면서, 너에게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어서, 네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함께 있는 게 자연스러워졌을 때쯤, 학교에서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반에서는 우리 둘만 친했던 터라, 네가 반 여자아이들과 같은 숙소를 쓰면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만날 때마다 네 안색이 좋아보였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불안은 잊혀 졌고, 맛있게 먹고 재밌게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둘째 날 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남자애가 우리 숙소의 문을 급하게 열어젖히고는 나를 불렀다.

  “야야, 너 빨리 나와 봐! 아니, 일단 저기 좀 봐.”

  그 아이가 허둥대며 가리킨 창밖을 바라보니 어떤 여자애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바닷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너였다. 수영도 못할 텐데, 그대로 가다간 네가 바닷속에 잠겨버릴 게 당연해 보였다. 문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밀치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구겨 신은 운동화에 발꿈치가 쓸려 따끔거렸다. 장난해? 네가 나갈 때 같은 방 아이들은 뭘 했어? 말렸어? 아니, 관심이라도 있었어? 본인들은 아무 것도 안하고, 지금도 직접 가 볼 생각은 안 하는 거야? 나를 부르면 그걸로 너희들 책임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숙소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분명히 선생님께서 얘기하셨을 텐데, 어디 가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어? 저 아이가 너희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려 로비를 지나면서, 아이들이 수근거리는 얘기를 들어버렸다.

  “왜 저길 들어가?”

  “쟤 귀신 본다며, 미쳐 버린 거 아니야?”

  아니야. 그냥 남의 슬픔을 너무도 잘 아는 아이일 뿐이야. 지금도 어떤 귀신이 불쌍하다며 위로해준답시고 들어가고 있는 걸 거야. 너는 그런 아이니까. 운동화 안으로 모래가 넘쳐 들어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척 힘겨웠다. 마구 흔들리는 시야에 흐릿하게나마 너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 멈춰. 소리쳐 네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헐떡이는 숨소리만 가득해 아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한심해, 진짜. 너의 어깨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마지막 힘까지 쥐어 짜내 바닷속을 달려서는 너의 손목을 잡았다. 돌아본 너는 역시나 울고 있었다.

  “저기, 저기에 어린 애가 빠졌나봐. 저기서 울고 있어.”

  돌아갈 생각 없이 손가락으로 아무도 없는 바다 저 편을 가리키는 너의 모습에 그동안 쉬지 못한 숨을 몰아쉬고는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다 너 죽어.”

  “하지만 엄청 울고 있는데... 너도 보일 거 아냐,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보여.”

  너를 똑바로 쳐다볼 순 없었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만은 놓치지 않았다. 너에게 처음 거짓말 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수천 번은 생각해 왔다. 언젠간 얘기해야겠지. 어떻게 얘기할까. 너는 많이 화내려나. 미워하겠지? 그래서 여태껏 미뤄왔건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너를 거기서 나오게 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 내가 미움받을 걸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너에게 보인다는 그 어린 애, 나한테는 안 보인다고. 보이지도 않는 귀신 때문에 널 바닷속으로 보낼 순 없으니까 그냥 나와.”

  그러고 나서야 너는 손목의 힘을 풀었다. 너를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확인하기가 두려워졌다. 그대로 네 손을 잡고 바닷속에서 빠져나왔다. 씻고 나서 바로 달려오느라 미처 두고 오지 못한 수건을 급한 대로 떨고 있는 너에게 덮어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담요라도 챙겨올 걸. 젖은 머리카락 위로 젖은 수건을 덮은 너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차마 얼굴은 보지 못하고, 이왕 얘기해 버린 거 다 털어놓자고 생각했다.

  “미안. 귀신 보인다는 거 거짓말이었어. ...그래도 절대 너 놀리려고 했다든가 그런 건 아니니까...”

  횡설수설하는 동안 너는 아무 말도 없었다. 조금 불안해져서 살짝 고개를 들어 너를 쳐다보았다. 너는 계속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조금 겁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너 귀신이 안 보인다고...?”

  화내려나. 이제 끝인 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만히 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럼 네 뒤에 있는 귀신도 안 보인다는 거지?”

  내 뒤에? 뭐 그렇지. 아예 안 보이는 거니까. 너는 조금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실은 너 처음 봤을 때부터 뒤에 귀신 한 명이 졸졸 따라다녔거든? 너도 귀신 보인다길래 아는 줄 알고 일부러 얘기 안 했던 건데... 물에 젖은 것 같고, 네 또래 정도 되는 나이인가...?”

  설마, 설마. 아니겠지. 말도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몇 분을 멈춰 있더니, 간신히 말랐던 눈물이 다시 네 눈에 고이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네가 말했다.

  “너 때문이 아니라고, 너 때문에 죽은 거 아니라고 전해달래. 늘 곁에 있었다고.”

  형이다. 어린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바다 깊숙이 들어간 나를 꺼내오겠다고 달려 들어간 형은, 원래 많이 아프고 허약한 체질이었다. 사실 물에도 들어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꺼내오고는 그 길로 앓아누웠고, 며칠 안 되어서 죽고 말았다. 형도, 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나 때문에 형이 그렇게 된 거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 후로 몇 날 며칠을 서럽게 울었다. 형이 좋아하던 프로그램이 TV에 나오면 하염없이 그 속만 쳐다봤고,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잘 놀다가도 형이 같이 놀아주던 게 생각나서 또 울곤 했다. 그 때마다 부모님이 했던 얘기, 형이 여기 있다는 게 정말이었다. 우는 너를 앞에 두고 나도 울기 시작했다. 나는 절대로 안 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힘들겠구나, 귀신을 본다는 건.

  “우리 형이야. 내가 많이 좋아한다고 전해 줘.”

  울음소리 사이로 간신히 꺼낸 말을 네가 전해 줘서, 아니 형이 직접 들었겠지. 너는 다시 형의 말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알고 있대. 계속 곁에 있으면서 느껴졌다고. 자기도 너를 많이 좋아한대.”

  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아까보다 더 크게 훌쩍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이 얘기 하려고 여태 기다린 거래. 너무 오래 있어서 이제 가야한다고.”

  잡을 수는 없는 거겠지. 형이 곁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시간들이 생각나서 형한테 진심으로 미안해졌다. 계속 곁에 있어줬는데. 이제 와서야 등 뒤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진짜로 형이 여기 있구나. 모래 바닥 위에 주저앉아서 그 온기가 사라져버릴 때까지 잘 가, 고마워하며 계속 울었다. 너는 마주 앉아서 훌쩍이며 우는 내 곁을 지켜 주고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데리러 오신 선생님께서 들고 계시던 담요를 하나씩 덮어 주셨다. 멀리서 계속 우는 우리를 보신 건지 크게 나무라시진 않았다. 멋대로 나가서 죄송하다고 선생님께 고개 숙이며 말하는 네 목소리가 왠지 평소보다 낮아서, 화난 걸까 하고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영영 제대로 말해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끝나겠지. 선생님 뒤를 따라 걸어가면서 이번엔 똑바로 너를 보고, 거짓말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도 너는 내 말을 믿어줬잖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보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게 뭔지도 몰랐고 누구나 다 보이는 건 줄 알았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무서워져서 곧바로 부모님께 얘기했지만, 당연히 믿어주시지 않았고 혹시 이 어린 애가 미친 건 아닐까 하고 병원을 그렇게 자주 데려 갔단다. 친구들도 믿어주기보다는 겁을 먹어서 지금 아이들처럼 너를 멀리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너의 곁에 남은 건 귀신들뿐이었고, 그들과 얘기하다보니 슬픈 사연들이 너무 많아서 점점 무서운 것보단 불쌍한 마음이 커져갔다고. 그래서 그 귀신들 몫까지 힘차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해 봐도, 네 편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는 밝은 척 하는 것마저도 너무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너와 같은 나를 만나서 정말 기뻤고, 고마웠단다.

  “처음엔 거짓말이라고 해서 놀랐지만 말이야, 잘 생각해보니까 그럼 너한테는 보이지도 않는 걸 내가 혼자 신나서 떠들어 대는데 너는 그걸 다 들어주고 있었던 거잖아?”

  나 감동 먹었잖아, 정말로 고마워.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그렇게도 예쁘게 웃는 너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귀신이 보이지 않아도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거짓말 같은 거 하지말 걸. 너랑 친해지고 싶다고,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해 볼 걸. 나야말로 고마워, 하고 웃으며 너에게 말했다. 꼭 잡은 너의 손에서 내 곁을 지켜줬던 형과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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