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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차

내가 알던 너는

*역설


  역설. 내가 참 좋아하는 표현법이다. 미운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너를 미워한다. 얼핏 보면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분명 너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더 멀어져만 가는 너와 나의 거리는 언제쯤 좁힐 수 있을까.

  어린 나이부터 홀로 자라온 너는 화목한 가정의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항상 밝은 아이였다. 충분히 마음 상했을 만한 상황인 것 같은데도 생긋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는 너의 표정에선 그 어떤 어둠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얘기하다 자연스레 부모님 자랑이 나올 때면 조금씩 밀려와 너의 얼굴 위를 가득 덮어버리던 불안과 공허함을, 오랜 시간 곁에 있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순간들은 잠깐 스쳐지나갔을 뿐이고, 아이들은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별다른 의미를 담지 않았고, 너는 금방 다른 화제를 꺼내며 같이 웃곤 했다. 나만은 너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모습을 보면 네가 밝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나를 보며 웃는 너, 거기서 묻어나오는 슬픔, 그것마저도 좋아서 아마 나는 너를.

  며칠 전, 혼자 남아 교실 뒷정리를 하는 너를 지켜보다가 흘리듯이 말해버린 진심에, 흘리듯이 대답하며 지었던 너의 표정이 잊혀 지지 않는다. 나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나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에는 아직 벅차다고.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너에 대해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는 너를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고, 모든 걸 이겨내고 밝게 살아온 것이 아니라 밝은 척이었으며 가끔 너에게서 보이던 슬픔이 실은 너의 진짜 마음이었다는 걸. 넌 언제나 강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나만의 착각이었고, 정작 너는 기댈 곳조차 없어 비틀거리고 있었다는 것까지. 사실,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그저 내가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하기 위해서 너는 괜찮다고, 이제 다 이겨냈을 거라고 멋대로 단정지어버렸다. 사랑받기 벅차다며 나를 밀어낸 네가 미웠지만, 그런 너이기에 섣불리 받아들였다가는 오히려 나에게 상처를 줄까봐. 알리고 싶지 않았을 너의 본심을 얘기해 준 네가 더욱 좋았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너의 얘기를 들어주고 싶고 힘이 되어주고 싶고 네가 어떤 사람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얘기해 주고 싶다. 강한 척하는 겉모습에 싸인 너의 약한 부분마저도 좋아하고 있다는 걸. 네가 너를 사랑하게 될 때까지 내가 곁에 함께 있어 줄 테니까 너의 아픔과 솔직하게 마주하기를. 언젠가 네가 모든 걸 이겨내고 웃을 수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수년간 내가 지켜봐 온 너라면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믿으며 나는 오늘도, 눈물로 가득 찬 너의 미소 속에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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