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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차

비 오는 날

  * 네가 좋아하는 비를 / 비를 좋아하는 너를

  후두둑-

  기분 좋은 빗소리가 들려온다. 창문 너머로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 차분해지는 듯한.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에 젖은 꽃잎들을, 특유의 풀내음을, 어두운 하늘을 좋아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빗소리는 좋아해도 비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성가셔지니까. 그런 것들을 다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비 오는 날의 경치를 좋아한다. 거센 빗줄기가 온갖 걱정들을 쓸어내려 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가벼워지고, 빗방울이 만들어 내는 리듬에 맞춰 어딘가가 벅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느낌, 창 밖에 비가 오는 교실, 그 풍경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너를.

  빗소리만이 들리는 조용한 교실. 눈을 감자 낭랑한 너의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 퍼진다. 너와 나만이 남은 공간,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글쎄,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이유는 왜일까.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인지, 너 때문인지. 이제 갈까, 하는 목소리가 빗소리와 살포시 어우러진다. 살짝, 우산을 펼쳐 들고선 나란히 걸어가는 너에게 묻는다.

  “비 오는 날, 좋아해?”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장난으로 넘겨버려도 됐을 법한 얘기를 너는 사뭇 진지하게 받아들이더니 나를 쳐다보며 반대로 물어왔다.

  "너는?"

  "나는 좋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나의 대답에 너는 조금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글쎄, 빗소리라면 좋아하지만. 여기저기 다 젖어버려서 곤란할 때가 많지.”

  아, 역시. 너도 그런 걸까. 생각할 때쯤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 너.

  “그래도 뭐, 네가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어쩌면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겠네, 비 오는 날.”

  그렇게 말하고 너는 조용히 웃었다. 우산 바깥으로 살며시 내민 너의 손 위로 빗방울이 톡-하고 떨어진다. - 이제 알겠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보다 조금 앞서 걸어가려는 너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본다.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는 너. 오직 빗소리만이 커다랗게 들려오는 그 고요한 풍경 속에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나둘씩 입 밖으로 꺼내 본다. 떨리는 내 목소리가, 이 마음이. 내리는 비와 함께 너에게 스며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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