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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차

10일 글쓰기 * 물고기 잘 모르겠다. 걔가 날 좋아해 주면 정말 기쁠 것 같은데 안 좋아해 줘도 좋을 것 같다. 걔랑 가끔 만나고 쓰잘 데 없는 이야기하고, 우리 동네 걸어다니고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막상 연애할 생각하면 귀찮다.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자기가 좋아하던 애가 자기 좋다 그러면 갑자기 싫어진다던데.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다. 나 좋다면 완전 땡큐지. 근데 그렇다고 나 안 좋아해 주면 막 죽을 것 같고 그렇진 않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데 나는 별로 간절하지도 않은가보다. 능력치가 골고루 다 떨어지면 간절하기라도 해야지, 그런 기본도 안 되어 있으면서 도대체 뭘 바라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아, 그래. 그러니까 이게 문제다. 내가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 더보기
내 곁에서 * 귀신을 보는 아이 X 귀신을 보는 척하는 아이 “나도 귀신이 보여.” 그래, 여기가 그 모든 일의 시작이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네가 날 돌아봐 줄 것 같아서. 나에게 있어 너만큼이나 네 안에서 나도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걸 보이는 척할 자신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믿어왔으니까. 형은 네 곁에 있어, 잊지 않으면 우리 곁에 살아 있는 거야. 내가 울 때면 항상 부모님은 그런 말들로 나를 달래려 했지만 형은 나를 구하려다 죽었고, 여기엔 없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 때는 믿어보려고 나름 노력했으니까. 내 말을 들은 너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너도 귀신이 보인다고? 그럼 내가 귀신을 본다는 것도 믿어주는 거야?” “당연.. 더보기
내가 알던 너는 *역설 역설. 내가 참 좋아하는 표현법이다. 미운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너를 미워한다. 얼핏 보면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분명 너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더 멀어져만 가는 너와 나의 거리는 언제쯤 좁힐 수 있을까. 어린 나이부터 홀로 자라온 너는 화목한 가정의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항상 밝은 아이였다. 충분히 마음 상했을 만한 상황인 것 같은데도 생긋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는 너의 표정에선 그 어떤 어둠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얘기하다 자연스레 부모님 자랑이 나올 때면 조금씩 밀려와 너의 얼굴 위를 가득 덮어버리던 불안과 공허함을, 오랜 시간 곁에 있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순간들은 잠깐 스쳐지나갔을 뿐이고, 아이들은 그 한 마디 .. 더보기
동경 *소꿉친구/자각 어쩌면 시작은 동경이었는지 모른다. 공부는 물론이고, 농구부 주장에 피아노 콩쿨 수상경력도 여러 번 있는 너는 정말 말 그대로 못하는 게 없는 아이였다. 거기다 성격도 나무랄 데 없었고, 성실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위 말해서 나랑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그게 너를 향한 나의 시선이었다. 그에 비하면 너와 같이 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나는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사람. 어딜 가나 한 명쯤 있는 그냥 그런 아이. 그 차이가 너무도 커보여서, 꽤 오랜 시간 너의 곁에 있으면서 느낀 감정들은 질투보다는 동경에 가까웠다. 경쟁자라고 하기도 벅찬 너와 내 사이는 나의 일방적인 존경과 부러움으로 채워져 갔다. 정말 한 순간이었다. 그 모든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옆집에 사시는 너의 어.. 더보기
네가 주인공인 나의 이야기 * 짝사랑 “좋아했어.” 과거형은 언제나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무언가 해보려 했을 땐 이미 늦었단 뜻이니까.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분명 처음엔 아니었는데. 내게 처음 말을 걸어준 게 너였고, 그 뒤로 종종 너와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취향이 꽤 잘 맞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친해진 우리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자연스러운 전개 속에서 나만이 자연스러울 수 없게 된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건가, 하고. 재밌는 건 한 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네 모든 게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동그란 눈이 예뻤고, 같은 것을 말하는 목소리가 예뻤고, 날 돌아보는 그 향기가 예뻤다... 더보기
나, 너를 위해 * 내가 너를 위해 / 너와 나, 우리를 위해 덜컹. 온 몸에 전해져 오는 진동에 놀라 눈을 떠보니, 아니. 눈을 뜬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주위가 온통 캄캄했다.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손도 발도 무언가에 묶여 있는 듯,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자루에 담긴 채 자동차에 실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나보다. 간신히 숨만 쉴 수 있는 작은 구명과 내 귀에 의존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도뿐이었다. 그럼 역시, 잡혀온 건가. 어디 아픈 곳이나 맞은 흔적은 없는 것 같으니 마취제? 수면가스 살포 같은 뻔한 함정에 당했나보네. 그래도 나름 경찰이라더니, 괜히 나서다가 이게 뭐야, 한심하게. 시작점은 1년 전쯤, 자신들을 테러조직이라고 칭하는 이들이 한 날 한 시에 들고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렇게 발.. 더보기
비 오는 날 * 네가 좋아하는 비를 / 비를 좋아하는 너를 후두둑- 기분 좋은 빗소리가 들려온다. 창문 너머로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 차분해지는 듯한.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에 젖은 꽃잎들을, 특유의 풀내음을, 어두운 하늘을 좋아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빗소리는 좋아해도 비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성가셔지니까. 그런 것들을 다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비 오는 날의 경치를 좋아한다. 거센 빗줄기가 온갖 걱정들을 쓸어내려 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가벼워지고, 빗방울이 만들어 내는 리듬에 맞춰 어딘가가 벅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느낌, 창 밖에 비가 오는 교실, 그 풍경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너를. 빗소리만이 들리는 조용한 교실. .. 더보기
밤하늘 * 죽은 사람X남겨진 사람 무서울 정도로 캄캄한 밤하늘. 온통 검정색이 되어버린 하늘은 흐리다기보다는 오히려 맑아서, 수채화를 칠한 듯 한없이 투명하고 깊어 보였다. 저 하늘로 뛰어 내린다면 인공위성인지 별인지 모를 그 무언가들 사이에서 편히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모두 잠들었을 시간, 고요한 풍경 속에서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눈을 감고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쉰다. 시원한 밤공기가 온 몸을 타고 돌아 기분이 한결 상쾌해진다. 네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바람소리, 에일 듯한 시린 공기. 조금은 이유를 알 것 같아. 어제 그 벤치에 앉아 이제는 없는 너의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눈을 감고 있으면 너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기억해 보려고 노력해도 너의 모습은 천천히.. 더보기
네가 있으므로 * 소꿉친구 그러니까, 더 이상은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땅이 꺼지든 화산이 폭발하든 갑자기 물에 빠지든, 잃을 것도 없는 인생 여기서 끝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좀 오래 전부터 그랬다. 이걸 잘하네, 이쪽 일 해보는 게 어때? 저걸 잘하네. 저건 어때? 뭐하나 잘난 게 없는 나는 그런 얘기 한 번을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항상 어른들은 말했다. ‘꿈’이 있어야 해. 너 커서 뭐하려고? 흥미 있는 걸 찾아봐. 그렇게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내가 얻은 결론 하나는, 이 세상 많은 일 중에 내가 좋아할 일은 없다. 그것 하나뿐이었다. 어찌됐든 뭐라도 해야지 싶어 남들 따라가다보니 어찌저찌 대학은 가 있더랬다. 그것마저 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