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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차

동경

0 is start 2017.12.15 17:52

*소꿉친구/자각


  어쩌면 시작은 동경이었는지 모른다. 공부는 물론이고, 농구부 주장에 피아노 콩쿨 수상경력도 여러 번 있는 너는 정말 말 그대로 못하는 게 없는 아이였다. 거기다 성격도 나무랄 데 없었고, 성실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위 말해서 나랑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그게 너를 향한 나의 시선이었다. 그에 비하면 너와 같이 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나는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사람. 어딜 가나 한 명쯤 있는 그냥 그런 아이. 그 차이가 너무도 커보여서, 꽤 오랜 시간 너의 곁에 있으면서 느낀 감정들은 질투보다는 동경에 가까웠다. 경쟁자라고 하기도 벅찬 너와 내 사이는 나의 일방적인 존경과 부러움으로 채워져 갔다.

  정말 한 순간이었다. 그 모든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옆집에 사시는 너의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국어책을 가져다주러 갔을 때, 너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반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 여기 네 교과서. 집에 두고 갔지?”

  “? 아 맞다.”


  나에게서 책을 건네받은 너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그제야 뭔가 떠올랐는지 뒤로 돌아 시간표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고마워!”

  평소에도 수십 번은 했을 말일 텐데 그날따라, 이쪽을 보고 환하게 웃는 너의 모습은 정말로 예뻐 보여서 그만. - 그럴 리 없어. 이건 아니야. 아무리 마음속으로 다시 되뇌어 봐도 황급히 돌린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 뒤로부터 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같이 걸어갈 때마다 양 볼은 시도 때도 없이 붉어졌다. 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이제는 힘겨워져버렸다.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 중얼거려봤자 될 리가 없지.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너는 좋아하지 않을 구석이 없었다. 공부 잘 해, 운동 잘해, 착하고. 이쯤 되면 네 주위를 졸졸 따라다니던 여자애들도 이해가 간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조금씩, 여태까지 봐 오던 너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좋아져만 갔다. 그리고 딱 그만큼, 나의 한심함도 더 커져만 갔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는 더 멀게만 느껴져서, 내가 평생을 노력해도 할 수 없을 일들을 너는 보란 듯이 해낼 거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정말 그 것밖에 못해? 그러고도 너한테 저 아이를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어? 아니, 없어. 나 따위는 가까이 갈 수 조차 없는 벽이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한다는 걸 이제껏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돼.

  사실 너와 나의 접점이라고는 그저 옆집에 사는 것, 같은 학교 나오면서 자연스레 같이 다녔던 것. 네 주위를 둘러싸는 여자애들과 내가 다른 거라곤 꼭 그거 하나뿐이다. 그것마저도 없었으면 난 너에게 무엇이었을까. 아니, 차라리 너와 내가 모르는 사이였다면. 다른 여자애들처럼 우상을 바라보듯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좋아했다가 장난인 것처럼 쉽게 그만 둘 수 있었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너를 좋아하기에는 네가 너무도 높은 곳에 있더라. 천천히, 마음이 차분해져 갔다. 없던 일로 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웃음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만 빼면.

  그래서 너를 피해 다녔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도, 일부러 톡 치고 지나가도 무시하고 갈 길을 갔다. 어쩌다 너와 같이 있어야 하는 자리가 생기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별의 별 짓을 다했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걸 느꼈는지 당황해하는 너의 모습을 얼핏 본 것 같지만, 일단 너와 관련된 모든 일에 요동치는 내 마음을 접는 게 우선이었다. 적어도 보지 않으면 괜찮겠지. 이런 생각으로 처음 맞는 금요일이었다. 5년 내내 너와 내가 항상 같이 하교하던 날. 몇 날 며칠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 생각만 하다가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너를 만나지 않고 집에 혼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일로 네가 나를 미워하게 된다면 나도 그 이유로 다시 널 어떻게든 미워해서, 내가 널 싫어하게 되어야 한다고. 왠지 우울해지는 마음은 흐린 하늘 탓이라고 변명해 보았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아직 아이들이 앉아 있는 너의 교실을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에 도착하자 우산을 쓰고 가는 아이들이 하나둘 보인다. , 비 오는구나. 가방에 우산이 들어 있지 않다는 걸 떠올린 순간 갑자기 울적해졌다. 정말, 기분 꽝이네. 손에 들려 있던 체육복 가방으로라도 머리를 가리고 가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 찾았다. 너 안 보여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잠시만. 내가 지금 누구 피하려고 이러고 있는데. 타이밍 진짜 별로인 거 알고 있어?

  그 와중에 들려오는 네 목소리는 너무도 따뜻해서, 안 그래도 울적한 마음에 이것저것 다 섞여버려 그저 어린애처럼,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 그러고 있는 거 보니까 너 우산 안 가져왔지? 왠지 그럴 것 같더라. , 내 거 같이 쓰고 가자.”

  으휴, 많이도 오네. 하고 중얼거리며 너는 내 옆을 지나쳐 조금 앞에 멈춰 섰다. 우산을 펴는 너의 뒷모습이 점점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 이러면 안 되는데. 제발, 더 이상 기대하게 만들지 말아줘. 너는 잠깐 그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나에게 말했다.

  " 요즘 너 나 일부러 피하고 있는 거 맞지,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서운한 거 있으면 말해 줘. 고쳐 볼게."

  그래, 넌 그런 아이였다. 또 네 잘못인 줄 알았겠네. 아니야, 이건 그냥 내가. 계속 그 자리에 멈춰 선 내가 네 곁으로 오고 있지 않다는 걸 눈치 챘는지, 네가 이쪽을 돌아봤다. 화들짝 놀란 눈을 하고서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던 너는 조금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정말 나 때문이야? 아니면 그... 무슨 일 있어? 힘든 일 있으면 괜찮으니까 나한테 말해. 울지 말고. 아니다. 많이 힘들면 울어도 돼. 그래도 안 울었으면 좋겠는데... ... 그러니까...”

  애쓰는 게 훤히 보이는 네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여태 혼자 해 온 고민들이 전부 바보같이 느껴졌다. 축축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누르면서,

  “정말, 이러면 미워할 수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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