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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차

나, 너를 위해

0 is start 2017.10.25 21:27

  * 내가 너를 위해 / 너와 나, 우리를 위해


  덜컹.

  온 몸에 전해져 오는 진동에 놀라 눈을 떠보니, 아니. 눈을 뜬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주위가 온통 캄캄했다.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손도 발도 무언가에 묶여 있는 듯,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자루에 담긴 채 자동차에 실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나보다. 간신히 숨만 쉴 수 있는 작은 구명과 내 귀에 의존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도뿐이었다. 그럼 역시, 잡혀온 건가. 어디 아픈 곳이나 맞은 흔적은 없는 것 같으니 마취제? 수면가스 살포 같은 뻔한 함정에 당했나보네. 그래도 나름 경찰이라더니, 괜히 나서다가 이게 뭐야, 한심하게.

  시작점은 1년 전쯤, 자신들을 테러조직이라고 칭하는 이들이 한 날 한 시에 들고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렇게 발달됐다고 자랑하던 인터넷을 통해 만난 이들은, 인터넷의 특징답게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었고 덕분에 사람들은 그 중심, 주동자조차 알지 못했다. 처음엔 방화나 절도 같은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는 듯싶더니 그 수법이 점차 대담해져, 총이나 폭탄을 비롯한 무기들도 등장해 인질극을 벌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모든 국가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지도 않았고, 조직 내에서의 의리와 충성이 이상할 정도로 강해 무리를 이끄는 사람의 정체를 단 한 명도 실토하지 않았다. 직접 범죄를 실행하는 행동대장들을 잡아들여 아무리 벌을 받게 해도, 사회에 대한 반발심이 컸던 건지 단지 재밌어 보였던 건지 나날이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어느 정도 힘이 세지자 그 조직은, 마치 자신들이 전 세계 위에 군림한다는 듯이 한 달에 한 번씩 타겟이 될 나라를 선정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나라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고, 폭탄을 터뜨리고, 혼란을 틈타 은행에서 돈을 훔치는 등 전국을 초토화시켜 놓는 것이었다. 표적이 된 국가들이 아무리 국가적 차원에서 보안을 강화하고 출입국 심사에 정성을 쏟아 부어도 국내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어디선가 모여들어 조직의 계획을 현실화시켜나갔다. 그렇게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그들이 타겟을 우리나라로 정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 어떻게든 피해를 막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쪽에도 유능한 인재가 많은지 IPGPS 추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차단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의 행동패턴, 사건의 유형 등 사소한 것까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 분석한 결과,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장소는 대략 몇 군데로 좁힐 수 있었다. 각 지역 경찰서에 이에 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강력반에 속해 있던 우리가 근처 예상지역에서 대기하다가 범죄가 일어나려는 낌새가 보이면 저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근처 건물에 숨어 예상시각이 오기를 기다렸다. 분침이 정각을 향해 째깍. 모자를 쓴 두 남자가 나타나 기름통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영 수상쩍었다. 바로 뛰쳐나가 그쪽으로 총을 겨눴는데, 그들도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총을 꺼내드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한 남자가 먼저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물론 빗나갔지만. 잘됐다 싶어 좋아, 이제부턴 정당방위다, 하면서 총을 잡고 있던 손에 각각 한 발씩, 다리를 살짝 스치게 한 발씩, 어딘가에서 이쪽으로 서툰 총질을 하고 있길래 멀리 뒤쪽을 향해 몇 발 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그들 뒤에서 꽤 많은 사람이 몰려나오던 장면. 정신차려보니 이 상태다. 몰려오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가스를 들고 온 게 확실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조직의 은신처? 가끔 들리는 덜컹소리만으로 어디쯤인지, 얼마만큼 왔는지 알아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동안 자동차에서 나는 소음이 잦아들더니 곧 어딘가에 멈춰 섰다. 트렁크 문이 열리는 듯했고, 사람들이 양쪽에서 우리의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텅 빈 방안인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를 자루에서 꺼내주기 전에 안 그래도 묶여 있는 몸통과 팔을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어설픈 조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철저하네. 손목을 세게 죄어오는 밧줄의 껄끄러움과 쇠기둥인지, 손등을 파고드는 차가운 느낌이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자루가 벗겨지고 고개를 들자, 네가 반대쪽 기둥에 묶여 있었다. 그 정도야 내가 바로 체포해오지 뭐, 하고 자신 있게 말하던 네 모습이 떠올라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도 그런 내가 웃긴지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머니, 주위 다 둘러봤지만 당연히 총은 없었다. 조직원들이 가져갔겠지.

  “, 이제 어떻게 할까.”

  “그러게.”

  그러게는 무슨 그러게. 경찰이랍시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인질로 잡혀 온 신세야, 우리 지금. 잡혀온 것 치고는 꽤 태평한 대화를 나누다가 바깥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넓은 유리창 너머 잔뜩 무장한 걸로 보이는 사람 서너 명의 얼굴이 왔다갔다했다. 무슨 영화 흉내라도 내고 싶었는지 정성껏 설치한 마이크에 대고 대장쯤 되어 보이는 조직원이 말을 하자, 우리가 있는 방의 스피커로 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와, 둘이 많이 친한가보다?”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한 목소리 주인의 얼굴이 유리창에 비춰졌다. 사람 신경을 긁어 놓는 듯한, 어딘가 녹이 슨 듯한 목소리에 확 짜증이 밀려왔다.

  “있잖아, 원래 너네는 그냥 인질로 잡고 있다가 역할을 다 하면 없애버릴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 너희가 가져온 총 돌려줄 테니까, 의논을 하든 가위바위보를 하든 너희들 중 한 명을 정해서 죽여 봐. 그럼 나머지 한 명은 확실히 살려서 보내줄게.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장난하나.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혹시 그건가? 사이코패스? 그럼 괜히 반응 잘못 해서 자극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겠다. 재미없으면 저러다 말겠지.

  “뭐야, 왜 대답이 없어? , 이걸론 좀 부족한가? 좋아. 이건 어때? 내 말대로 너네 중에 한 명이 죽으면 1년쯤 계속해온 이 테러, 깔끔히 그만둘게. 이 정도면 해 볼만 하지 않나?”

  중간 중간 웃음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게 무슨 게임인 줄 알아? 도대체 사람 목숨을 얼마나 하찮게 보고 있는 거야? 팔도 묶여 있고, 몸통도 묶여 있고. 아쉬운 대로 흙 묻은 운동화가 신겨진 발을 공중에 들었다가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 내가 얼굴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각오 단단히 해둬. 지금까지 너 때문에 죄없이 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

  “미안한데, 너 상황파악을 전혀 못 하는구나? 둘 중에 하나는 여길 살아서 나갈 수 없다니까? 그리고 내가 그 정도 대비도 안 해 놨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 식이면 여태 당신네 경찰들은 왜 날 못 잡았을까?”

  분하지만 맞는 말이다. 생김새는커녕 목소리, 국적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니까. 이 상황을 거쳐 간 인질들은 모두 이 파렴치한 인간의 얼굴을 봤던 걸까. 어차피 모두 죽어서 확인은 해 볼 수 없지만. 이 정도까지 얘기했다는 건 단순한 장난은 아닐 것이다. 말하는 걸 보면 우리에게만 이런 기회를 주는 것 같은데, 누가 알아. 매번 그렇게 말해 놓고 결국 마지막엔 다 죽였을지. , 어떡하지. 별로 머리 쓰고 싶진 않은데.

  “, 그럼. 총 돌려줄게. 세상을 구하고 죽을 영웅도 정할 겸, 마지막 얘기도 나눌 겸 해서 10분쯤 주면 되려나? 물론 허튼 짓 하려 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둘 다 죽는 거야. 물론 10분을 넘겨버려도 둘 다 쾅!”

  쾅 같은 소리 하네. 아무래도 이상한 인간한테 제대로 걸린 것 같은데. 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들어와 우리를 묶어두었던 자루에서 총을 꺼내더니 네 옆에, 내 옆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고 나갔다. 삐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유리창 너머 타이머에 10분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아이고, 친절하기도 하셔라. 그 뒤에서 녹슨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떻게 사람이 웃는 얼굴로 저렇게까지 짜증을 유발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실까. 956, 955. 어쨌든 시간은 가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옆에 놓여진 총을 바라보았다. 분명 내 총이다. 여기로 오기 전에 총을 많이 쐈기 때문에 내 계산이 맞다면, 지금 이 총엔 총알이 들어 있지 않다. 서로 총을 바꾸기엔 거리도 멀고. 달리 이곳을 벗어날 획기적인 방법도, 몰라.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 당연히.

  “뭐 해, 어서 쏴.”

  너는 누구보다 경찰이 되고 싶어 했던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경찰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며 어딘가 뿌듯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너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질문하신 이래로 매번, “저는 꼭 경찰이 될 거예요!”하고 자랑스럽게 외치던 모습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날 내 교복 옷자락을 붙들고 서럽게 울던 모습도. 그 날, 강력계 형사이셨던 너희 아버지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도망가던 그를 추적하다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범인의 총기사용으로 총상을 입으셨다고 했다. 범인이 발포한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옆에 있던 경찰들이 범인의 다리를 쏴 검거는 성공했지만, 아버지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주제넘은 소리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네가 그 일로 인해 경찰이 되는 것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큰 상실감과 좌절감을 느껴서, 너희 어머니께서 그러하셨듯이. 그런데 너에게는 그 일이 오히려 더 큰 동기로 다가왔나 보다. 남편에 이어 자식까지 잃을 수 없다며 간절히 애원하시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너는 꿋꿋이 경찰이 되겠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경찰배지를 옷에 달고 기뻐하는 너의 모습은, 어렸을 적 아버지를 올려다보던 그 표정과 겹쳐져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너를 따라 경찰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한 것뿐이었다. 슬슬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가 다가올 때쯤 봤던 영화에 나온 경찰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에. 어떻게 하다 보니 시험에도 합격하고 너와 같이 경찰이 되었지만, 애초에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시작한 내 경찰배지가 의미하는 무게가 너의 그것과 같을 리 없다. 그러니까,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룬 너니까. 조금이라도 더 살아 줬으면 좋겠어. 이 지경이 된 것도 어찌 보면 내가 신중하지 못했던 탓이니까. 어설픈 나보다는 네가 살아남는 게 훨씬 합리적이야. 간단한 문제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5분 정도가 흐른 것 같았다. 네 표정을 읽어보려 했다. 언제나와 같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항상 나는 네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정말 엉뚱한 생각도, 내가 상상도 못해 본 기발한 생각도 네 그 표정에서 나왔다. 그럴 때마다 마주보고 크게 웃기도 했고, 큰 소리가 나도록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답은 하나. 네가 나를 쏴야 해. 그 표정은 어쩌면, 고민하고 있는 걸까? 애매한 정이 남아버렸으니까, 죄책감이 들어서? 네가 아무 고민 없이 나를 쏘게 할 확실한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날 미워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어쨌든 마지막 모습인데. 좋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네. 이건 조금 이기적인 생각일까.

  “왜 그래. 어서 나를 쏴. 이 정도 상황도 예상 못한 건 아니잖아? 테러범 상대하러 온 건데.”

  여전히 땅을 응시하고 있는 너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언젠간 죽을 거, 지금 네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 말에 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울고 있는 듯한 그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겨있을까. 멀어서 잘 보이지가 않아. 너는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로 옆을 더듬어 총을 손에 쥐었다. 떨리는 팔을 들어 나에게 총구를 겨누는 너의 모습을 기억한 채 눈을 감았다. 내 두려움을 네가 끝까지 눈치 채지 못했으면 좋겠어. 삐빅하고 매초마다 울리는 타이머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

  총을 너에게 겨누어 봤다. 네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아니야, 안 돼. 내가 널 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너한테 같이 경찰하자고 하지 말 걸. 위험한 상황이 있을 거라는 거, 분명히 알고 있었으면서. 널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뭐든지 하기만 하면 잘 해버리는 아이였다, 너는. 그 정도면 운이라기보다는 재능이겠지. 모두가 부러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는 무엇을 하든 흥미를 전혀 갖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너에게 나랑 같이 경찰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한 건 나였다. 아니, 거의 조르다시피 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어쩌면 너는 별로 흥미도 없는 일을, 억지로 해가면서 어울려 준 건 아닐까. 나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네가 나에게 맞춰주길 요구해왔는지. 그런 너를, 내가 감히 어떻게.

  사실 알고 있다. 우리 중 하나가 죽는다고 해서 저 악질 테러범이 테러를 확실히 멈출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걸.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렇게 밖에서 버티고 있는 한, 우리가 밧줄을 풀든 저쪽을 향해 총을 겨누든 조금만 수상한 행동을 보여도 바로 죽여 버릴 테니까.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보자. 정적 속에서 홀로 요란한 타이머 소리. 어느새 230초를 지나고 있었다. 너는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내가 아직 총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기서 내가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아무도 쏘지 않는다면. 이미 경고했으니 틀림없이 둘 다 죽이겠지. 너를 부상 입을 정도로만 쏜다면. ‘죽으면이라고 확실히 조건을 달았으니 죽을 때까지 기다리려나. 그렇다면 역시, 내가 죽어야겠다. 물론 저 테러범이 약속을 지킨다는 전제에 한해서지만, 내가 죽으면 너는 살 수 있겠지. 너는 저 얼굴, 이곳 똑똑히 기억한 채로 살아나가서 저 테러범을 잡아. 너는 무엇이든 잘 하니까, 분명 나보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객관적으로 보든 주관적으로 보든 네가 살아남는 게 당연한 거야, 알고 있지? 나는 영웅이 아닌 걸. 네가 쏘라고 한다고 내가 널 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정말로.

  “미안. 널 죽이고 세상을 구할 정도로 위인은 못 돼, 나는.”

  나한테는 너를 구하는 게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하니까. 나도 정말, 이런 생각으로 경찰은 무슨 경찰. 줄곧 눈을 감고 있던 네가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타이머는 이제 50초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놀란 네 모습을 보니 벚꽃이 피어있던 그 때가 생각난다. 지금과 같은 눈을 하고서 내가 토해내는 울음 섞인 이야기를 들어주던 너는, 말없이 같이 울어주었다. 어쩌면 지금껏 나의 모든 순간 속에 네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마다 옆에서 울어주고, 웃어주고. 그 따스함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도. 내가 죽으면 너는 또 울어주려나. 조금은 슬퍼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너에게 그 정도 의미도 안 된다면 그건 좀 많이 서운할 것 같아. 이것 봐, 또 바라는 말들뿐이네. 힘없이 땅에 내려놓았던 손에 다시 총을 꽉 쥐었다. 항상 범인을 향해 겨누던 총구를 돌려 이번엔 내 머리를 향하도록 해 보았다. 평소보다 더 심하게 손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25, 24. 사실 둘 다 죽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런 위험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지금 같이 떠나버리는 건 어떨까. 그렇지만 일단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조금이라고 할지라도 이 테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죽기 싫다는 네 마음이 표정에 빤히 보이는 걸.

  “끝까지 이기적인 나라서 미안.”

  내뱉은 목소리가 얕게 떨려왔다. 너는 아까부터 닿을 리 없는 손을 힘껏 뻗으며 안 돼, 하지 마. 하며 계속 외쳐대고 있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너의 마지막 모습이 되겠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의 나약함을 너에게 들키고 싶진 않으니까. 알아. 무책임하다는 거 알아. 너한테 다 떠넘기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알아. 그래도 난 네가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그러니까, . 미안해.

  탁.

  둔탁한 소리가 날아와 내 손에, 정확히는 내 손 안의 총에 부딪혔다. 서둘러 손 안에서 튕겨나간 총의 행방을 찾으니 그 옆엔 또 다른 총이 놓여 있었다. 눈에 익은, 너의 총. 소리의 근원지로 눈을 돌렸다. 잔뜩 화가 난 듯한 네 얼굴이 눈에 차올랐다.

  “이까짓 세상 구하겠다고 널 죽게 놔둘 것 같냐. 네가 꼭 죽어야겠다면 당연히 나도 같이 가는 거야. 알아들었어?”

  이 정도 거리면 손을 아무리 뻗어도 총에 닿지 않는다. 정말, 쓸 데 없이 정확하게 던지기는. 7, 6. 한시도 멈출 생각을 않는 타이머에 조금 짜증이 났다. 너 살리겠다고 내가 죽으려 한 건데, 너도 죽어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 이게 뭐야, 바보 같아.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네 눈가가 젖어 있는 듯 했다. 울고 있는 걸까. 멀리 보이는 네 모습이 자꾸만 흐릿해져 갔다.

  1, 0. -.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타이머 소리가 머릿속에 울리고 이내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너에게 말할 기회가 두 번 다시는 없을 것 같아서 네 시선에 눈을 맞추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동안 내 응석 받아주느라 고생 많았다. 고마워.”

  담담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잔뜩 울먹거리는 내 목소리가 들려와 조금 당황했다. 너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어딘가 비어 있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면 좀 잘하지 그랬냐. 나도 뭐, 그냥...”

  뒷말은 거의 삼켜져 버려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고마워였던 것 같다. 그냥 그런 것 같았다.

  탕.

  원래 총소리가 이랬던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슬퍼야할 것 같은데 솔직히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빠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나도 이렇게 죽는 거네. 엄마 얼굴 볼 낯이 없다. 미안, 엄마. 그래도 나 경찰된 거, 후회하지 않으니까. 검붉은 피가 끈적하게 흘러나오는 배를 부여잡고도 계속 고개를 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네 모습을 보기 위해서, 눈을 감으면 기억이 나지 않을 까봐. 한껏 소리치며 울고 있는 네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도 이게 네가 보게 될 나의 마지막 모습이니까.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내 웃어보였다. 그치만 말야, 내가 기억할 너의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우는 얼굴이라는 건 조금 아쉽네. 이왕이면 웃고 있는 편이 좋았을 텐데. 이제 곧 너에게도 총을 쏘겠지. 네가 아파하는 보습은 보고 싶지 않기에 눈을 감아버렸다. 이것도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 내 이기심이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용서해 줘. 눈을 감으니 주위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줄곧 울먹거리고만 있는 줄 알았던 네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미안, 다 나 때문이야. 미안해.”

  정말, 혼자 센 척은 다 하더니 끝에 와서 이게 뭐야, 괜히 마음만 약해지게. 뒤이어 들려오는 총소리에, 네 목소리를 잊지 않으려 속으로 수십 번을 곱씹어보았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새삼스레, 너의 그 한 마디에 얼마나 큰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 마지막 너의 말에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얘기해주지 못한 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이제라도 전해질 수 있다면, 안녕. 부디 네가 겪을 아픔이 나의 것보다 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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