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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차

네가 있으므로

0 is start 2017.03.26 13:40

  * 소꿉친구


  그러니까, 더 이상은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땅이 꺼지든 화산이 폭발하든 갑자기 물에 빠지든, 잃을 것도 없는 인생 여기서 끝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좀 오래 전부터 그랬다. 이걸 잘하네, 이쪽 일 해보는 게 어때? 저걸 잘하네. 저건 어때? 뭐하나 잘난 게 없는 나는 그런 얘기 한 번을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항상 어른들은 말했다. ‘이 있어야 해. 너 커서 뭐하려고? 흥미 있는 걸 찾아봐. 그렇게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내가 얻은 결론 하나는, 이 세상 많은 일 중에 내가 좋아할 일은 없다. 그것 하나뿐이었다. 어찌됐든 뭐라도 해야지 싶어 남들 따라가다보니 어찌저찌 대학은 가 있더랬다. 그것마저 졸업하고 나니 정말로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아무 것도 없는 한심한 인간이 되어버린 걸.

  그래, 정말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 잠깐 편의점 다녀오는 길에 나에게 달려오던 자동차 한 대. 내 눈 앞을 가득 채우는 그 헤드라이트 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이 너라면 믿어줄까. -하고 울리는 경적소리에 잊지 않고 떠올리려 한 게 네 목소리라면 너는 날 이해할 수 있을까. 나를 바라보던 너의 눈빛이, 너를 보던 나의 마음이 하나둘씩 되살아나서 머릿속이 얼룩져 갔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줄곧- 내가 서러워서 울 때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웃었을 때도,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놓아버리려 했던 순간에도 항상 곁에 있어주었던 건 너였더라. 너와 함께 공원을 걷고, 영화를 보고 놀이터에 앉아서 하릴없이 그네를 삐걱삐걱.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우산 없이 비오는 날 냅다 거리를 달리다가 서로를 보며 실컷 웃었던 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작은 것들이 얼마나 큰 의미였고 감사해야 할 일이었는지. 아이 같은 내 투정을 모두 받아주면서 정작 네가 힘들 때는 나에게 한 마디 얘기하지 못하고 그저 웃는 얼굴로 넘겨버렸을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너에게도 그 상처들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슬플 때는 슬프다고,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가끔 너무 힘이 들면 짜증도 부리고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너도 여린 아이였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도 나는 너에게 아무런 것도 해주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깨달아버린 건 그냥 넘겼던 너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나를 위해 주고 있었다는 것. 나를 향한 너의 마음, 아니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나는 아직은 죽을 수 없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까, 이제 알겠어? 병원에서 눈을 뜬 나에게 맨 처음 보인 게 너의 우는 모습이었을 때, 내 심정이 어땠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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